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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매축지 마을, 재개발 전망

에움길 발행일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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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오지마을, 매축지 마을

 

 

부산 매축지 마을은 부산 동구 좌천동과 범일동을 겸한 자성교 아래의 부두마을이다. 이곳은 이제가 매축사업을 통해 평지로 만들었고, 일본으로 한우를 가져가기 위해 임시적으로 소를 가두는 움막이 있던 곳은 우암동이고, 매축지 마을은 지용자들을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 임시 머문 곳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사람들이 개조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6.25 전쟁이 일어나 피난민들이 몰려 큰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곳은 점점 고립되어 발전하지 못하고 버려진 마을이 되었다. 현재는 좌천동과 범일동 일부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두산위브 아파트가 들어와 개발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남은 곳도 얼마가지 않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 방문일 2024년 4월 16일

 

2010년 6월 16일 매축지 마을의 좌천동 지역을 다녀와 올린 글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다시 찾으면서 이전과 너무 달라진 모습, 그러나 아직 변하지 않는 모습을 담아 보았다.

 

 

 

 

매축지 마을은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정식적인 이름은 좌천동 그리고 범일동이다. 지금은 두산위브 아파트가 들어서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느껴지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심 속 오지 마을이었다. 철길로 가로막혀 있어서 외지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묘한 동네였다.

 

좌천 삼거리

 

봉생병원 앞에서 내려 좌천고가교 육교를 통과해 들어갔다. 봉생병원에서 내려 건너편 부산항일동미라주 아파트 앞으로 가면 좌천고가교 밑 간이 육교가 보인다. 난 항상 저곳이 궁금했다.  좌천삼거리는 부둣길에서 수정터널로 들어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교차한다. 이곳은 관문대로 마지막 지점이자 시작점이다.

 

좌천삼거리

 

 

좌천고가교 밑으로 철길을 건너갈 수 있는 간이 육교가 만들어져 있다.

 

 

도로 밑 육교는 청조망이 있어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 

 

 

계단을 올라가단 중간 쯤에 바라본 좌천동역. 경부선의 종점인 부산은 승객 외에도 화물을 싣기 위한 많은 기차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다.

 

 

육교 마지막은 좌천동 건너편에 닿아 있다.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기차와 수많은 차량들이 오가는 곳에 마을이 있다. 

 

 

육교를 내려와 왼쪽을 보면 수복빼다귀해장국이 있는 곳으로 가면 매축지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철길이 있다. 풀도 많고 녹이슬어 옆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으니 이틀에 한 번 정도 기차가 화물을 싣고 오고 간다고 한다. 바로 옆에 컨테이너 선적장이 있다. 오래전 가끔을 이곳을 지나다 기차를 만나면 정차를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긴 화물 기차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는데 아직도 기차가 다닌다니 신기하다.

 

 

 

다산 위브 아파트 입구쪽으로 들어가면 매축지 마을이 시작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와 매축지 마을이 갈린다.

 

제자로 교회

 

제자로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부산노회 소속 교회이다. 이전에는 '좌천동 교회'였다. 매축지 마을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1952년 9월 5일 부산신학교 학우회가 창립한 교회이다. 1953년에 부산진매축지교회로 바꾸었다가 1957년 다시 좌천동교회로 개칭한다. 2012년 4월 10일 새로운 목사가 부임하여 수영로 교회 이름을 따서 '제자로 교회'로 바꾼다. 

 

 

 

매축지 마을 지도

 

 

매축지 마을, 2무 3다 마을

 

매축지 마을에는 두 가지가 없고, 세 가지가 있는 곳이다. 없는 두 가지는 부엌과 화장실이고, 있는 세 가지는 빈집, 공중화장실, 노인이라고 한다. 한 때 좁은 집에서 다섯여섯이 살았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것이다. 집이 너무 좋아서 부엌과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매축지 마을은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마을 곳곳에 공동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매축지 마을 공동 화장실

 

 

대도 이용원

 

좌천도 매축지 마을에 있는 이용원으로 지역 주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용원이다. 제자로교회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범일도 쪽에 성실 이용원이 있어 매축지 마을에 두 곳의 이용원이 있다.

 

 

 

다라이 마을

다라이는 대야의 일본말 다라이(たらい)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대야라는 말은 충남이나 전북에서 지역 사용하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다라이가 한자어로 대야가 되고, 대야가 다시 일본어로 다라이가 된다. 이 말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대로 다라이가 된다. 일본 사람들이 다라이라고 하니 그것이 일본 말이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고려시대의 문헌에도 대야라는 한자어가 사용되어 있다. 

 

  • 표준국어대사전 '다라이' 일본어 : 금속이나 경질 비닐 따위로 만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그릇.

로 표기 되어 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하여튼 매축지 마을을 주변 사람들은 다리아 마을이라고 불렀다. 왜 다라이 마을일까? 집에 공간이 없어서 다라이는 밖에 두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아직도 많은 '다라이'가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좌천동 매축지 마을 골목길

 

 

 

영신목재, 2010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니 다른듯 같다. 거의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건물이 많이 낡아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2010년에 찍은 영신목재 사진

 

2010년과 비교해 보니 오늘 갔을 때는 육교로 올라가는 길에 엘리베이터가 설치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남슈퍼도 많이 낡아있다. 14년이 흐른 풍경이니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찍은 사진

 

온 김에 마을 건너편에 잠깐 갔다 왔다. 

 

 

 

자성로 밑에 있는 굴다리다. 이 굴다리에서 나와 자성로를 타고 부산진시장 방향이나 문현동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굴다리 위로 올라와 이곳에 사는 샴고양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늘 지나가면서 보았던 건물인데, 이곳에 사시는 분과 한참을 이야기 했다. 이 고양이는 10년 전쯤에 어떤 사람들이 자신이 키우지 못해서 맡겨서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도로변인데 위험하지 않냐고 물으니 절대 큰 도로는 나가지 않고 집 앞 도보에서만 지낸다고 한다. 정말 신기한 고양이다.

 

 

다시 육교는 건너와 매축지 마을로 들어왔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한참을 돌았다. 좁은 골목을 지나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에어컨 신외기를 보았다. 이곳도 점점 발전? 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름보일러 또는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 아직도 연탄 보일러가 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지만 산동네로 가면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름보일러나 연탄보일러는 사용한다.

 

 

 

물도 연탕을 이용해 데우고, 작지만 부엌에서 음식도 해서 먹는다. 이번에 이곳에 사시는 몇 분의 이야기를 듣고 많아 놀랐다. 난 매축지에 사는 분들이 정말 가난한다고 생각했는 아니었다. 범일동에 작년에 들어선 두산위브더제니스하버시티아파트의 입주민 절반 정도가 매축지 사람들이라고 한다. 정말 너무 놀랬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 물으니, 벌써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른 부산 사람들이 일도 없고 굶주릴 때 매축지 사람들은 부두에 가서 하역 작업을 해서 돈을 벌었고, 육교 건너 범일동과 주변에 들어서 방직공장에서 일해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분도 이곳에 60년 정도를 살았다고 하면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셨다. 지금도 '조방'이란 식당이나 지명이 사용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방직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2023년) 동구 구청장이 도시철도 역명에 일제 수탈의 상징인 조선방직을 넣어 침체한 상권을 살리자는 주장을 해 시민들이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국제신문, 2023년 1월 9일 자, "일제수탈 '조방(조선방직)'을 도시철 역명으로?)

 

 

 

 

매축지 주택 사이로 건너편 두산위브 아파트가 보인다. 

 

 

이곳에도 공동화장실이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연로한 분들만 남아 있다. 실제로 자녀들이 다른 곳으로 모시고 싶어도 친구들이 있어 그냥 이곳에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이젠 가족이 함께 살지 않고 요양원에 보내니 가기 싫은 것이다.

 

 

 

 

이 길이 좌천동과 범일동이 갈린다. 앞에 보이는 골목을 사이로 왼쪽이 좌천동이고, 오른쪽이 범일동이다.

 

 

좌천동 방향의 골목길

 

 

오늘 처음 알았는데, 이 골목을 시장 골목이라고 한다. 좌천동과 범일동 사이의 길에 시장이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장을 봤다고 한다.

 

 

 

원조 순대집

 

하루종일 걸었더니 너무 배가 고파서 '원조 순대집'에 들어가 선지국밥을 한 그릇하고 나왔다. 시원한 국물이 정말 좋았다. 주인 아줌마가 너무 예뻐서 조금 놀랬다.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니 답을 안 하신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하니 그렇게 봐줘서 고맙다고, 훨씬 많다는 말만 하신다. 도대체 얼마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설만 70이 넘으셨나?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처음 보는 자성로 지하차도, 이곳은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철도가 다녔던 굴이라고 한다. 부산은 굴다리, 서울은 토끼굴. 하여튼 이젠 이곳으로 기차는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다닌다. 이곳을 지나면 부산진시장 뒷골목으로 바로 연결된다. 사실 가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곳이 있나 싶어서.

 

 

철로 옆으로 수도 길게 마을이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보니 부산은 철길말을 정말 많다. 철로가 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이렇게 철로와 딱 붙여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 서면 굴다리 철길마을

▶ 가야 굴다리 범천동 철길마을

▶ 주례2동 철길마을 디딤돌마을

 

 

 

 

 

다시 돌아와 범일동 매축지 마을로 들어갔다. 뒤로 보이는 돌벽은 자성로이다. 왼쪽으로 가면 좌천삼거리이고, 우측으로 가면 자성대교차로가 나온다. 

 

 

 

벌써 100년이 넘은 길이다. 저 계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을까? 누군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스민 곳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 마을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마을의 상황을 보니 더 이상 개발하지 않고 두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계단을 타고 자성로로 올라와 매축지 마을을 바라보았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고립된 매축지 마을. 이전에도 부둣길과 철로에 둘러싸여 고립이 아닌 고립되어 열약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 소외된 마을이었다.

 

 

 

 

다시 골목으로 내려와 이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구멍가게 옆에서 고양이가 잠들어 있다 내가 다가가니 눈을 뜨고 쳐다본다. 

 

골목과 골목, 또 다른 골목과 골목이 이어진다. 14년 만에 왔으니 다시 14년이 흔 뒤에 이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마을이 있기나 할까? 아마도 재개발되어 수십 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몇 번을 미루다 오늘 다시 매축지 마을을 다녀와서 한결 마음이 가볍다.

 

오늘 찍은 사진들도 추억이 되리라. 누군가 살았을 공간, 장소, 그리고 골목들...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이곳에 모두 올릴 수 없어 아쉽다.  다른 사진만 따로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

 

 

 

 

 

 

 

♣ 더 많은 부산의 자연마을을 살펴 보기 원하는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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