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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구 지명 유래

에움길 발행일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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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구

'수영'을 잘해야 수영에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팔도 시장 주변과 수영교차로는 지대가 낮아 여름만 되면 항상 물에 잠긴다. 아직도 변함이 없다. 특히 망미동 우리은행 주변으로부터 팔도시장 주변은 매년 물에 잠긴다. 그래서 수영동에 살려면 수영을 잘해야 한다. 물론 농담이다. 수영이란 지명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에서 '수영'을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물 수 있기는 하다.

 

수영구는 부산의 본토?와 해운대 사이를 흐르는 수영강이 도도하게 흐르는 지역이다. 부산에는 낙동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영강은 서낙동강과 맥도강, 조만강처럼 부산 외각에 자리한 강이 아니다. 부산의 중심을 뚫고 지나가는 유일한 강이다. 수영구를 설명하는데 수영강이 필요한 이유는 수영구의 경계이기도 하거니와 수영구의 역사나 특징이 수영강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수영강 차체와 연관된 문화시설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수영구는 수영강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 민락동의 수변공원은 수영강의 하류에 자리하고, 광안리는 수영강의 영향으로 모래가 쌓인 곳이다. 수영강과 수영구의 역사는 후에 보기로 하고 수영구의 지명 유래를 살펴보자.

 

광안리 해수욕장
광안리 해수욕장

 

수영동

수영동은 수영구와 같은유래이다. 경남 좌도 수군 절도사영에서 수영이 왔다. 현재의 수영사적공원이 좌도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곳이다.

 

수영동 옛성터
수영동의 옛성터 돌담

 

수영동에는 아직도 옛성터가 있지만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참 안타깝다.

 

수영 사적 공원

 

수영 사적 공원

 

 

광안동(廣安洞)

 

광안동은 넓을 광(廣)에 모래 언덕 안이 사용되었다. 광안(廣岸)은 넓은 해안가란 뜻이었다. 광안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광안리 해수욕장은 멸치를 잡던 곳이었다. 언제부터 모래 안은 평안할 안(安)으로 바뀌어 현재는 넓은 평안한 곳?이 되어 지금은 넓은 평안?을 뜻하는 광안(廣安)이 사용되고 있다.

 

1975년 광안 1동과 2동으로 나뉘고, 1979년 8월에 광안 1동이 1동과 3동으로 나뉘고, 1982년 9월에 광안 2동인 4동과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안동의 황령산 기슭은 오래전 남촌면으로 불렸다. 관광객이나 심지어 수영에 살아도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곳이 호랑이 마을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남촌면은 축산동(광안동), 숭정리(망미동), 감포리(수양백산 주변), 동부리(수영동의 북쪽), 남문외리(수영성의 남쪽), 남천리(남천동)가 있었다. 황령산의 동남부 기슭이라 할 수 있다.

 

성분도 치과 부근에 호랑이를 닮은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호랑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호암골로 부르고 있다. 수영중학교 부근은 장대골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시대 군사시설이었던 장대가 이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광안동 호암골

 

 

망미동(望美洞)

 

망미동에는 구락리와 오옹건니가 있다. 수영동과 망미동 사이에 작은 산이 있는데 이름은 망산이다. 망미(望美)는 망산의 망 望 과 배미산의 미 美 가 붙여져 생긴 이름이다. 배미산은 현재 지명이 '배산'으로 되어 있다. 배산은 척산으로도 불렸다. 망미가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라 수영에서 한양을 보고 그리워 절을 했다는 망미로 보는 이들도 있다. 망미동의 톳고개가 토끼가 동쪽을 보며 절한다는 뜻이 있는 것을 보면 망미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조선시대 부산은 외지 중의 외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감이 된다.

 

망미동 F1963
망미동 <F1963> 서점과 휴식공간이 있어 사람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구락로를 수영동과 망미동 주변의 도로 지명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구락 마을은 현재 수영팔도시장 근처에서 현재의 정과정 유적지가 있는 이편한아파트까지의 마을을 말한다. 이곳은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역이라 수많은 어족이 풍부했다고 한다. 특이하게 하얀 모래가 이곳에 쌓여있고, 흰 갈매기가 많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정과정 유적지는 이곳으로 유배를 당해 살아가던 역사와 맞물려 있다.

 

망미동의 정과정 유적지
망미동의 정과정 유적지

 

 

구락마을 표지판
구락마을 소개글
수영강변 이 편한 세상 앞 구락마을의 현재 모습
수영강변 이 편한 세상 앞 구락마을의 현재 모습

 

민락동(民樂洞)

 

민락동은 광안리 해수욕장 동편에 자리한 백산 주변이다. 현재 수역 사적공원이 작은 언덕이고, 백산이 조금 높은 산인 것을 볼 때 수영교차로와 수영교로 넘어가는 길목은 밀물 때는 바다였을 것으로 보인다. 민락은 '여민동락 여민해락'의 준말로 '임금은 즐거움을 홀로 차지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에서 왔다. 백신북쪽에 보리전 마을이 있었고, 남쪽에 널구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두 마을이 잘 어울려 행복하게 지낸 것을 빗대어 부른 것이 민락이 된 것이다.

 

 

남천동(南川洞)

현재의 남천동은 광안리해수욕장 가장 서쪽 지역이다. 황령산 터널을 지나 광안대교로 이어지는 대로의 왼쪽이다. 남천동의 삼익아파트는 부산의 벚꽃 3대 명소로도 유명하다. 남천동의 유래는 남천이란 작은 하천에서 유래했다. 금련산에서 현재의 부경대 대연 캠퍼스로 흘러내리는 작은 한천이 남천이다. 남천의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남천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이곳은 남촌면 하단 남촌리에 속했다. 1975년 남구가 신선되면서 남구 남천동이 되었다가 1995년 남구에서 수영구가 분구되면서 수영구 남천동이 되었다. 해운대를 제외하면 상당히 부유한 사람들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남천동에 속한 자연 마을로는 대리 마을, 일패 마을, 이패 마을, 삼패 마을, 사패 마을 등이 있다. 행정동은 남천 1동과 남천 2동이 있다. 남천동에 수영구청이 있어서 실질적인 수영구의 중심 지역이다.남천동의 상징인 남천삼익비치아파트는 현재 재개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자료]

수영구 공식 블로그 "수영구의 역사(동명유래) 행정동별유래"

부산역사 문화대전 <민락동>

부산역사문화대전 <남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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