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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문현동 강선대 (광선대)

에움길 발행일 :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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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대는 한자어로 廣仙臺이다. 넓을 광을 써서 신선들 놀았던 넓은 곳이란 의미다. 강선대는 한자어로 降仙臺이다. 강은 내려오다는 뜻으로 신선들이 내려 온 곳이란 뜻이다. 광선대를 후대에 만들어진 이름이며, 원명은 강선대가 맞다. 아마도 강선대를 잘못 오해하여 광선대라 부른 것이 확장된 것이 아닐까 싶다. 

 

광선대(강선대) 광선대(廣仙臺)는 오늘날의 문현 3동과 문현 4동 자리가 되는 배정초등학교와 배정중ㆍ고등학교가 있는 산일대로 그 주위가 펑퍼짐하여 신선들이 와서 놀았다는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신선은 불노불사(不老不死)로 바람과 구름을 따라 밟지 않고 자유롭게 공중을 노닐며 구슬소반의 이슬을 마시고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옷자락을 날리며 명산(名山)에서 쉰다고 한다. 그 신선의 모양은 구름과 같아서 가까이 가면 금시 나무 밑에 있고 더욱 가까이 가면 바람이 몰고 가 버려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속계에서 희구하는 상상 속의 바램 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학적인 추론으로는 이를 해안선에서 흔히 일어나는 신기루(蜃氣樓)를 보고 난 뒤의 상상일 것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봉건시대의 군주라면 이러한 경지를 더욱 열망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서복(徐福)과 방사(方士)를 신선의 산인 삼신산(三神山은 蓬萊山 方丈山, 瀛州山을 말함)에 보내 불사(不死)의 영약(榮藥)을 구해 오게 했다. 그 삼신산은 동해 바다에 있다 하였고 부산의 옛 이름 동래가 동해의 봉래산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보면 옛 동래에는 신선과 관련된 곳도 많을 만하다.

지금은 교통이 번잡하고 학교와 주택가가 밀집해 있는 이곳에 신선이 오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더욱이나 일제 때에는 축우 도살장이 이곳에 있었고, 이 부근으로는 쇠고기 통조림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옛날 옛적은 항상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신선의 장소인 영도의 봉래산이 바로 지척이다. 그 봉래산과 어울린 광선대는 신선들이 함께 어울려 오갈 만도 하다. 광선대라 불린 지금의 배정학교 위쪽 길가에 ‘서시과차(徐市過此)라는 돌비석이 광복 후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서시(徐市)는 진나라 진시황이 삼신산으로 불사약을 구하러 보낸 서복을 말한다. 서시가 진나라를 떠날 때는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명을 배에 실어 떠났다고 했다. 옛날은 가고 전설만 남는다는데 광선대는 전설마저 잃어 가고 있다. 일설엔 신선이 내려와서 놀던 자리라 하여 강선대라 불리어지기도 한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강선대가 자리한 이곳은 조선시대 소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이었습니다. 이곳의 조선말기 우암동에서 사는 사람들이 문현동으로 넘어갈 때 지나야 하는 고갯마루가 있는데, 부산장으로 간다하여 '장고개'라 불렀습니다. 장고개라는 지명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강선대는 현재의 배정고등학교 문현해운맨션이 있는 자리입니다.

 

강선대 유래에 대한 또 다른 설입니다. 조선시대의 어떤 중전이 이곳을 지나다 풍광이 너무 멋있어 '강선'이란이라 이름했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억지스러운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양의 중전이 부산까지 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조선의 어떤 관리가 강(동천)을 건너다 지금의 강선대를 보고 풍경이 좋아선 선대(아름다운 곳)라 하여 '강선대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지를 받기 힘든 주장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강선대가 어떻게 해서 붙여진 것인지 명확히 알기는 힘듭니다.

 

영도의 봉래산을 마주보고 있는 강선대는 해변가라 종종 안개나 낮은 구름이 이곳을 덮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신선이 노는 것 같이 보여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로 붙여 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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