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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유래] 부산광역시 서구

에움길 발행일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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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서구 지명유래

 

부산시 서구는 부산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곳 중의 하나이다. 아미산과 천마산 사이에 끼어 있는 서구는 부산의 중심지에 자리하면서도 소외된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영도나 수정도에 비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삶의 터전은 더욱 열악하며 급속하게 빈집이 늘어나 재개발이 가장 시급한 곳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인구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재개발은 거의 힘들어 보인다.

부산시 서구 지도

이미지는 위키백과 [서구(부산광역시)]에서 가져옴

 

서구의 행정 구역

서구는 13개의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2024년 2월 기준 서구의 인구는 106,446명이다. 108,852명인 영도구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인구는 부산 공공데이터포털을 참고함)

 

  • 동대신1동
  • 동대신2동
  • 동대신3동
  • 서대신1동
  • 서대신2동
  • 서대신3동
  • 서대신4동
  • 부민동
  • 아미동
  • 초장동
  • 충무동
  • 남부민1동
  • 남부민2동
  • 암남동

 

서구 지명 유래

 

부민동 (富民 洞)

부민동은 동아대 캠퍼스가 된 임시수도기념과 있는 있는 곳으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보수천 하구에 부민포(富民浦)가 있었는데, 이곳은 부산(富山)의 유래가 되는 부 (富)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부민포는 부산 사람들이 사용하는 포구라는 뜻이다. 현재는 매립되어 사라졌지만 부민포가 있던 근방을 부민리로 불렀고, 1931년에는 부민정이라고 불렀다. 1947년 대안동으로 바뀌었으나 1959년 부민동으로 개칭해 본래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부용동(芙蓉洞)

부용동은 행정동이 아닌 법정동으로 본래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는 잘 모르는 이름이다. 부용은 이곳에 부용이란 꽃이 많이 피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998년 10월 1일 이후 인구가 급속하게 줄어 행정구역상 '부민동'에 속한다.

 

아미동(峨嵋洞)

 

아미동은 서구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서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 끝에 비석마을이 자리하고, 그곳을 지나면 사하구 감천동 문화마을로 진입하게 된다.

 

아미동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움집을 뜻하는 애막이 변하여 아미가 되었다는 설이다. 애막의 기원이 되는 반월형의 토성이 있는데 이것을 아미월이라고 불렀다 한다. 아미월에서 아미동이 생겼다는 설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이 산의 이름을 아미산으로 불렀고, 아미산 입구에 연애 바위가 있어 영험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미산 입구에 있는 연애바위

 

 

암남동 (岩南洞)

암남동은 서구의 가장 서쪽 아래에 자리한 곳으로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이곳은 사하면 암남리에 속한 곳이었다. 암남동은 행정동과 법정동과 지명이 모두 동일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암남공원에 동물검역소는 수역혈청제조소를 직할하던 곳으로 줄여서 혈청소로 불렸다. 혈청소 곁에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모깃개라는 마음이 생겼고, 이곳은 모지포, 또는 모치포라고 부른다.

 

 

 

 

초장동(草場洞)

 

초장동은 천마산을 서쪽에 두고 있는 곳으로 충무동과 남부민동을 옆에 끼고 있다. 초장은 가장 아래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천마산 기슭에 자리를 하고 있어 무지하게 교통과 주거환경이 열악하하다. 하지만 경관이 매우 뛰어나 충무동과 남포동, 남항과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은 이전 글 [초장동 남부민동 산복도로]를 참조 바람.

 

부산 고지도에 의하면 원래 이곳에 영도 목장원으로 옮겨지기 전 말을 먹이는 초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소 풀초를 사용하고 있다. 초원의 풀을 찾아 용마가 내려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사람들이 들어서기 전에 산기슭에 풀이 많이 말들이 지내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충무동(忠武洞)

충무동은 중구의 남포동과 접한 곳으로 부민포가 있던 자리다. 지금은 매립되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서구청이 있던 자리가 부민포였다. 더 정확히는  현재 자갈치역과 ABC볼링센터 주변이 부민포였을 것이다. 현재의 남포동, 충무동, 광복동은 보수동 등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서구청 자리에 대정공원이 만들어지고, 그 아래로 큰 광장이 만들어진다. 당시 만들어진 광장은 부산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1931년 일제는 매축사업을 통해 소화정을 세웠다. 하지만 광복 후 1947년 이순신 장군의 부산 해전을 기념하여 충무라는 이름으로 수정하게 된다.

 

토성동(土城洞)

토성동은 충무동 행정관할의 법정동이다. 지명은 남아 있어 토성동 1가에서 5가까지 사용되고 있다. 토성동은 원래 이곳에 토성(土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토성은 현재의 아미동 화장장이 있던 천주교 아파트 부근을 중심으로 아미골 아래에 반원형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현재 경남중학교 부근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반원형의 토성은 신라 초기나 가야 시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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